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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간부수련회를 다녀와서....

사무국장|2010-03-10|조회 148
노동조합 간부수련회를 다녀와서....

아침 일찍부터 조합사무실이 북적거렸다. 수련회에 참가하는 대의원, 협의회위원, 상집위원등이 속속 모여들어 노동조합 조끼를 착용하고 버스에 올랐다. 봄을 재촉하는 가는 빗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수련회 장소인 변산에 버스가 도착한 시간은 예상보다 약 1시간가량 지체되어 도착했다. 예정된 교육을 진행하면 2시나 되어야 점심을 먹을 수 있다. 급히 일정을 변경하여 숙소 앞 백반집에서 우선 점심을 해결하고 교육을 진행하기로 했다. 성찬은 아닐지라도 전라도 특유의 맛깔스런 밑반찬 덕에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교육장으로 이동했다.


첫 번째 교육은 마이클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SICKO(식코:병든이) 영상교육이다.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충격적 실태를 고발한 영상이다. 우리와는 관계없는 미국의
의료제도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식코“는 단지 의료보험정책만을 조명한 것이 아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주장하는 극우적 민주주의의 폐해, 중앙정부가 나서는 것을 무조건 빨갱이적인 발상으로 몰고 가는 기득권층의 극단적인 사고방식이 그 땅의 국민들을 얼마나 바보천치로 만들어 놓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식코“의 메시지는 가치가 있다. 현 정부의 무한 자율경쟁 논리에 우리의 사고와 가치를 가두어 둔다면 언젠가 우리도 찢어진 무릅을 스스로 꿰매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영상교육을 마치고 나니 참가한 동지들의 피곤한 기색이 역역하다. 하지만 소중하게 마련된 시간이기에 예정된 ”노동가요 및 구호제창“교육을 막 바로 실시했다.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조직부장인 김성학동지의 진행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과 ”파업가“를 율동과 함께 배우는 동안 동지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점점 볼륨을 높이듯 교육장을 가득 메웠다. 여세를 몰아 ”구호제창“ 교육, 어색하게 시작한 시간이었지만 교육을 마칠 무렵에는 모두가 투사된 것처럼 거침없는 구호가 흘러나온다. 10분간 휴식 후 다시 교육이 진행된다. 꼭 고등학교 수업시간 같다.


이번시간에는 공공기관 선진화와 관련하여 공공연구노조 정책위원장인 이성호동지가 나선다.
이명박 정권의 공공기관 선진화와 노동조합의 대응”이란 주제로 공공기관 선진화 추진의 개괄적 흐름과 2009년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 지방공기업 선진화 추진방향, 올해 주요 쟁점, 그리고 공공기관 운영 감독과 통제를 살펴 보고 노동조합의 대응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을 갖었다. 두 번째는“공공부문 성과주의 도입과 노동조합의 대응 - 연봉제를 중심으로”란 주제로 임금 계약 개별화와 고용조정의 연계문제, 노조 임금교섭의 무력화 문제 등을 다루었다. (조합 홈페이지에 교육자료 게시)


어느덧 저녁시간이 다가와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동지들의 건배제의로 몇 순배 소주잔이 돌고 찌게가 졸아들 무렵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도중에 3월생일 맞은 동지들을 위해 작은 케익을 준비하고 함께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중간에 역사탐방을 같이 할 박준성선생이 도착하시고 권주가로 멋진 타령과 민요, 닭똥집이 덜덜덜.... 이렇게 즐거운 연대의 시간은 깊은 밤까지 이어졌다.


이른 아침 숙취가 가시지 않은 꺼칠은 속을 해장국으로 달래고 또 다른 하루의 일정이 시작됬다. 농민전쟁 유적지로 이동하는 버스안은 수면제를 뿌려놓은 것처럼 고요하다.
첫 탐방지로 백산성이다. 모두들 기지개를 켜며 버스에서 내리는 모양이 안스럽다.
“앉으면 죽산(竹山) 서면 백산(白山)”1894년 동학농민군 8천여명이 이작은 백산에 집결하여 반봉건, 반외세를 외치며 사회의 주인으로 농민들을 역사의 전면에 드러낸 역사적 장소다. 누구나 평등하게 잘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려는 농민군의 꿈과 투쟁이 현실에서는 실패하였지만 역사에서는 승리한 가열참이 느껴졌다. 함께한 박준성 선생으로부터 유적의 의미를 설명 듣고 다음 장소인 “만석보터”로 이동하기위해 버스에 올랐다. 만석보는 전형적 탐관오리인 고부군수 조병갑이 부임하자마자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기존의 민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석보를 다시 쌓고 수세 명목으로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이고 폭정을 일삼아 허덕이던 농민들이 일어나 만석보를 때려 부숨으로써 농민전쟁의 발단이 된 곳이다. 만석보터 둑방위에서 맞는 오늘의 찬바람이 100여년전 억눌린 농민들이 분연히 일어선 마음처럼 시리게 다가왔다.


다음은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다. 실내라서 잠시나마 추위를 피할 수 있어 좋았다. 들어선 입구에 농민봉기를 결의를 한 수령 약 200여년된 말목장터 감나무가 우리를 맞았다. 투명전구 2만개로 꾸민 상징조형물은 농민전쟁 당시 희생된 30만 혁명군의 혼을 상징한다. 농민전쟁 유물과 세계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침략 상황을 묘사한 전시물들이 인상적이었다. 잠시 관람 후 건너편 황토현기념관으로 이동이다. 농민군이 관군을 기습 공격하여 크게 물리친 전적지로서 농민전쟁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곳에서는 전봉준장군의 영정과 동상 그리고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을 볼 수 있다.


황토현기념관 입구에는 전두환대통령의 유시로 역사유적지를 정화하였다는 ‘황토현전적지정화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전두환 이름위에는 돌로 찍어 놓아 검은색 돌이 하얗게 변해있었다. 전봉준장군의 동상 모양은 머리가 맨상투다. 이것은 죄수의 형상으로 잘못 표현되어 있다. 이는 우리의 시대적 모순과 과제를 해결하려 치열하게 싸워본 적이 없는 친자본적 조각가의 작품으로 이해된다. 쪽문을 열고 올라간 얕은 봉우리위에는 감오동학혁명기념탑이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모습으로 하늘로 육중하게 치솟아 있다. 이는 현실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국가주의적 의도가 담겨진 전형적인 상이라 설명한다. 상하 수직적 신분제도를 타파하고 수평적이고 대등한 인간세상을 꿈꾸었던 농민군의 투쟁의미가 퇴색되는 상징물인 것이다. 마지막 탐방지인 주산마을 무명동학농민군위령탑의 조형과 확연히 비교된다.


벌써 12시 40분. 배가 고프다. 찬바람 속에서 계속 움직이니 허기가 더하다. 말목장터 감나무터 옆 식당으로 들어갔다. 양재기에 담긴 김치찌개와 모듬밥이 몇 번씩 추가로 들어오지만 인심좋은 주인장은 돈을 더 받지 않았다. 삼십여명이 먹은 양이 육십인분은 될 듯 싶다.


허기를 달래고 향한 곳은 전봉준장군 고택이다. 말그대로 초가삼간이다. 세마지기 논농사와 서당 훈장으로 평범하게 지내던 시골 범인을 가열찬 혁명의 투쟁장으로 나서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한 폭정과 탄압은 과연 어떠하였을까 상상해 본다.


여정은 계속 이어저 전봉준장군 등 20여명이 모여 사발통문을 작성하고 개혁을 모의하였던 주산마을로 향했다. 마을입구에 동학혁명모의탑이 서있다. 통문의 작성자중 누군가가 주모자로 지목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사발을 대고 둥근형태로 작성자의 이름들을 기재하여서 사발통문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작은 주산마을의 동네 길은 육중한 버스가 마을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다. 마을 끝머리 녹두회관 앞 무명동학농민군위령탑으로 걸어들어 갔다. 그곳에는 이름은 있으되 역사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고 쓰러져간 수 많은 농민군의 영혼과 넋을 위로하고 추모하려는 무명동학농민군위령탑이 위치하고 있다. 여기에는 좌우 균형의 받침대와 육중한 돌기중이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솟아 있지 않다. 주탑에는 1987년 6월 항쟁시 최루탄을 맞고 쓰러져 피흘리는 이한열을 생각나게하는 이미지가 새겨져 있다. 주변의 작은 보조탑에는 무명농민군의 얼굴, 무기로 썼던 농기구 등이 새겨져 있다. 이 탑들은 사이에 공간을 두어 가까이 다가가 안아보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게 하여 역사를 직접 느껴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특징적이란다. 마지막 탐방 유적지가 깊은 인상을 준다.


이제 2일간의 수련회 일정이 모두 끝나고 일상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만공스님의 천사불여일행(千思不如一行 : 천번의 생각보다 한번의 행동)의 의미를 되새겨보며 소중한 기회를 준 함께하지 못한 조합원동지들께 감사하고 수련회를 함께한 대의원, 협의회위원, 상무집행위원 동지들의 느낌이 현장으로 전달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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