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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학습에 대한 글.

위원장|2010-03-10|조회 131
전날의 일정을 뒤로하고 동학농민혁명의 의미와 배경 또한 전적지별 의의와 건축되어있는 동상 또는 탑 등에 숨어있는 시대적 이야기 등등 학습의 안내자 역할을 훌륭히 해주신 박준성동지를 처음 만난 장소는 “백산”이었다..
나지막한 산(?)이었지만 바람은 매서웠다. 다들 떨고 있었지만 박동지의 설명이 시작되고 조금씩 몰입해 들어갔다....물론 학습 중 질문자는 거의 없었다.

동학농민혁명의 간략한 흐름은 이러했다.
1892. 5월 고부군수로 조병갑이 부임하면서 기존 민보 하류에 신보를 축조키위해 농민들을 강제동원 시키면서 정당한 농민들의 진정을 난민으로 몰아 형벌에 처하고 이에 대항하는 농민들이 1894. 1월 고부관아를 점거하고 신보를 파괴하였다. 이 사건으로 고부군수 조병갑은 파직되고 그해 3월에 동학농민군의 민권을 찿기위한 민중봉기대회(백산)를 시작으로 여러차례의 관군 및 일본군과의 접전 1894년 11월 공주 우름치에서 일본군에 패하고 12월 순창쌍치 피노리에서 전봉준장군이 피체되고 1895면 3월 동학농민군 전봉준, 손화중, 최경선장군이 사형되면서 끝을 맺는다.

박준성동지의 세세한 설명을 토대로 찿아 다녔던 백산과 화호, 만석보, 동학혁명기념관, 황토현전적지, 전봉준장군생가 등은 노동자로서의 나를 짧은 시간이었지만 깊게 되돌아보는 계기를 주었고 오랬동안 잊고 있었던 녹두장군 전봉준을 다시금 기억해 내게 해주었다.

우리는 많은 핑계거리를 가지고 산다. 기실 노동자들의 역사와 그 역사속에 숨어있는 진실 또는 아프지만 기억해야하는, 동시대를 같이 살지는 않았지만 느껴야하는 것들이 많이 존재하는데....바쁘다, 힘들다는 핑계로 너무 놓고 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글을 통해 고백하는 이런 결심이 또 얼마나 갈지 그 건 하늘만 알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만이라도 지켜보고 싶다. 우리의 역사, 노동자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면....여러가지 평가들을 하겠지만 이러한 교육의 진행은 좀 더 많은 조합동지들이 느껴볼 수 있는 방향을 찿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많은 동지들과 힘들었지만 같이 했고, 남도에서 맛 보는 진짜돼지고기 김치찌개의 맛도 서로 나누고 할테니까.......더군다나 인심도 김치찌개가 무한리필일세, 무한리필.....ㅎㅎㅎ
더 많은 동지들을 역사에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며..
몆자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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