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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ㄲ가 견공(犬公)이 된 사연 <펌글-2010.11.29 필독>

백사자|2010-11-30|조회 177
ㅅㄲ가 견공(犬公)이 된 사연 
 
고려시대 무신정권 치하에서 무신권력자들은 단지 길에서 눈에 거슬렸다는 이유만으로 양민을 폭행하고, 때로는 사망에 이르게 했다. 칼끝에서 나온 권력이 곧 법이 되는 시대였기에 기분에 따라 법을 초월한 게지만, 어쩌면 이 정도는 나은 편이다. 고려시대에는 그래도, 이런 짓을 하면 욕을 들이 부어줄 여론이란 게 있었다.

 
일본의 영주들은 단지 휘하 사무라이들에게 칼쓰는 법을 훈련시킨다는 이유로 부라쿠('부락'이라는 뜻으로 최하층민들인 '부라쿠민'의 거주구역)를 학살하기도 했다. 프로이센과 작센의 군주들은 총의 성능실험을 순진하게 밭을 갈던 백성에다 대고 했으며, 프랑스 루이 14세의 아들은 공식 만찬석상에서 옆에 앉은 아가씨의 얼굴을 단지 재미를 위해 피떡으로 만들었다. 스페인의 신부들 중 일부는 일부러 미녀를 골라 마녀로 몰았다. 아름다운 육체를 고문하는 게 더 가학적인 쾌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구한말에도 소위 '괘씸죄'로 멍석말이를 당하는 머슴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회를 앙시앙 레짐(구체제)이라 부르기도 하고, 봉건사회라 칭하기도
한다. 그냥 구린 옛날이라고 해도 된다. 허용되는 행동의 범위가 그 사람이 가진 권력의 크기에 비례하는 사회. 그리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부모 잘 만난 어떤 자식이 한 노동자의 얼굴에 셀 수 없는 주먹질을 하고, 그를 알루미늄 배트로 13회 가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피해자 유홍준씨는 무릎을 꿇으라는 비인간적인 요구를 받아들였다. 자신을 박해한 이들의 눈앞에서, 피가 거꾸로 솟는 굴욕을 삼켜야 할 정도로 누군가에겐 삶의 고리가 허술하다. 1년여간 일이 끊긴 그는 탱크로리를 팔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고3이라는 딸의 학비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가장의 어깨는 그의 무릎이 땅에 닿게 할 만큼 무거웠으리라.
 
혹자는 때로 있는 자의 눈밖에 나는 것이 곧 사지(死地)로 밀려남을 뜻하는 한국 사회의 수준을 욕할 수도 있겠다. 부자가 되어야 최소한의 인간적인 행복을 누림은 물론 자족적으로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이 사회 말이다. 대한민국이 자본의 노예를 양산하는 사회가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 이 얘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자. 오늘은 가해자의 가해행위만 놓고 봐도 이야기가 간단치 않다.
 
복날, 안락사를 시켜도 동일한 그람수의 고기나 나오는 개를 굳이 매달아 패는 이유가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것이듯이, 최철원이 자신과 사회에 아무런 불법도 행사한 바 없는 한 노동자를 개패듯 팬 이유도 그런 것이었을 수 있다. 마치 중력의 법칙이라도 되듯, 맞으면 고분고분해질 거라고 제딴엔 생각했을 수도 있다. 모 자동차회사 회장의 경추관절이 콩밥을 시식하고 부드러워진 것처럼... 
 
당 사건에 대해 대중이 느끼는 분노는 강호순이나 김길태 등에 대한 그것과는 다를 것이다. 그들은 내 아이가 다니는 길목에서 입맛을 다실 지도 모르는 괴물이었다. 어떤 종류의 분노는 공포에서 온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공포는 산길에서 호랑이를 만나게 될 가능성에 대한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반면 <알루미늄 배트맨>에 대한 분노는 이 사회가 일반의 상식과 최소한의 정의를 토대로 세워져 있지 않다는 공포에 기반한다. 
 
노동자가 먹고살기 위해선 노조에 가입할 권리조차 반납해야 하는 사회(최철원이라는 지방군주를 모시고 있는 M&M이라는 회사는 운수노동자의 고용승계를 위한 조건으로 화물연대 탈퇴를 내걸었다.). 공적자금이라는 명목으로 재벌이 국민의 세금을 대량으로 삼키고, 갚지 않아도 되는 사회. 병역의 의무를 지킨 이들이 총을 들고 그렇지 않은 이들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사회. 그렇게 의무를 다하며 사는 이들이 반칙을 일삼는 자들의 주머니를 책임져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노리개가 되어 대당 100만원짜리 샌드백으로 소비될 수 있는 사회.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인권을 타고난 시민이, 권리를 충분히 행사하지 못 할 뿐만 아니라 인격과 자존감이라는 배타적 권리까지 훼손당할 수 있는 사회. 노동자인 나를, 단지 나보다 돈이 (아주) 많은 것 외에는 어떠한 법적 권리도 지니지 않은 자가 모욕하고 구타할 수 있는 사회.  
 
물질만능주의의 천박함과 결탁한, 정의가 마비된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것. 이 사회가 이토록 구릴 수 있다는 두려움. 개인이 아니라, 그 개인을 감시해야 할 사회가 이성을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이것이 최철원의 폭력이, 길거리 광인의 폭력과 다른 공포를 자아내는 이유다.
 
물론, 최철원이 그냥 단순한 개ㅅㄲ일수도 있다.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는 일. 재벌 2세라고 해서 죄다 ㅆ가지를 모유에 말아먹으며 태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재벌집 자식이므로 인성이 졸렬하다는 연역추리는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시장통에서 빨간 다라이를 이고 떡을 팔며 육남매를 키운, 법 없이도 살만한 인격의 홀어머니에게도 법이 없이 살아선 안되는 극악무도한 자식이 있을 수 있으리라.
 
김길태가 부모 잘 만나 죄없는 어린 영혼을 유린한 것이 아니듯, 외제차가 즐비한 동네에나 산동네에나 개의 종자들, 즉 선오브비치는 어디에나 있지 않던가. 선천적으로 개의 씨를 받아 태어난 그리된 건지, 사람 대신 개가 짖는 집안에서 가정교육을 받고 자라 개가 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성경에 따르면 성령이 어디에나 임하듯, 죄악은 어디에서든 샘솟는 법이 아니던가.
 
하여 최철원이는 개ㅅㄲ임이 맞으나, 그 연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M&M의 임원이란 작자들이 피해자에게 한 행동을 보면, 이 사건은 개인의 문제를 벗어나게 된다.
 
방송에서 녹취한 전화통화에서, 임원들은 도리어 피해자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피해자를 때리고 준 돈은 "파이트머니"다. 심지어 2000만원어치도 맞지 않았다는 거다. 그들에게 보편적 정의는 중요치 않다. 누구의 편인가가 중요할 뿐. 이렇듯 충심으로 자신을 보위하는 바로 밑의 하위카스트에 의해 개ㅅㄲ는 견공(犬公)으로 승격된다.
 
한편 자신보다 강력한 타인의 종노릇을 하는 자는,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이의 인격을 인정하지 않는다. 상위카스트에게 기꺼이 인격을 바치는 이유는 그렇게 해서 하위카스트를 종으로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이 행인을 팬다고 개가 주인을 물던가? 피해자를 향해 짖을 뿐이다. M&M 임원들이 유홍준씨에게 짖어댄 이유도 그러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돈으로 쳐바른 자신의 안전한 성에서, 졸개들에게 둘러싸여 폭력을 행사한 최철원의 마음을, 난 장담할 수 있다.
 
그는 분명히 분노했을 것이다.
 
인도의 귀족들은 하위카스트의 '불결함'에 진심으로 분노한다. 그들은 하위카스트와 신체적인 접촉이 일어날 가능성에, 낮은 계급이 만든 음식을 먹을 가능성에 몸서리친다. 마찬가지로 제 배경을 돈권신수설, 아니 왕권돈수설이라도 되는 듯 계급으로 해석하는 최철원 견공도 감히 제 권위에 도전하는 일개 노동자를 현대판 멍석말이로 응징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문제는 대한민국이 근대국가이고, 민주공화국이며, 따라서 만인이 법앞에 평등한 나라, 아니 평등해야 '하는' 나라라는 거다. 그는 돈의 생득권으로 타인의 법적 생득권을 침해했다. 중세 귀족의 만행에는 일말의 정당성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력으로 영토를 점거했다(마찬가지로 옛 인도에서 군주들의 계급은 크샤트리아(무사계급)다. 억압자이자 보호자이기도 한 그들의 만행은, 저들 딴에는 피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 여지가 몇 그람은 있는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 불리는 '사회에 대한 책임'도 사실은 전투에서 나온 개념으로, 전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나 지킬 수 있는 기득권의 양에 비례하게 위험을 감수한다는 뜻이다.  
 
제멋대로 사람을 때릴 수 있는 권리가 있을 수도 없으되, 민주공화국에서 재벌의 권리란 본질적으로 사유재산의 권리에 불과하다. 법 앞의 평등은 노동자가 재벌 2세에게 린치당하지 않을 권리도 지켜주지만, 쇠파이프를 들고 난입한 서민 100명에게 재산을 강탈당하지 않을 부자의 권리도 지켜준다. 부자의 안전한 재산권은 불특정 다수가 지는 국방의 의무에,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되는) 공권력이 지켜내는 생명과 재산과 신체의 자유에 토대를 두고 있다.
 
하물며 재벌의 방대한 산업을 지탱하는 사회인프라도 대부분 국민의 세금으로 구축된 것이다.(하긴, 최철원의 배경이 되는 SK의 경우는 재벌 중에서도 특별한 사례이긴 하다. 선경그룹은 사돈이 현직대통령을 하던 6공 시절 국민의 재산인 이동통신망을 마치 혼수선물받듯 독점해 대기업 SK로 성장했다.)
 
물론 이는 이 폭력적 물질만능의 사회에서 이상적인 소리일 수 있다. 상식이 이상이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식은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계급성에 침을 뱉되, 정글의 계급논리에 함몰될 필요는 없다. 
 
개가 사람을 물었다. 여기까지는 개인의 일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개의 품성과 (재벌이라는 배경이 만들어낸)권력이 만나 일어났다. 여기까지도 개인사일 수 있다. 이제부터 당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여기서부터 사회문제가 된다. 상위카스트의 적극적 노력뿐 아니라 하위카스트의 수동적 묵인도 계급사회의 전제조건이다. 천민은 자신이 천민이라고 믿기 때문에 천민이 된다. 이번 사건에서 주제가 되어야 할 것은 힘없는 개인의 울분도, 약자의 한도 아니다. 국민의 주권으로 성립한 국가가 한 국민의, 국민된 권리를 지켜내느냐 마느냐의 기계적인 문제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 사건을 감시해야 하는 이유는 국가가 배타적 앙시앙레짐으로 퇴화하는 모습에 동의할 수 없고, 동의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어쩌면 근대국가의 탈을 쓴 앙시앙레짐이 자신감을 얻고 뻔뻔히 가면을 벗어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도 우리는 동의할 수 없다.) 국가는 우리-국민 일반-의 소유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당 사건뿐만이 아니라, 이와 비슷한 모든 부조리에 대해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다.
 
 
글을 맺으며, 한편...
 
국가를 이야기하니 자연스레 국격을 말씀하신 가카가 떠오른다. 촛불도 '불법 폭력'으로 규정하신 가카께서 지조때로 알루미늄 배트 신공에 얼마나 분노하실지 눈에 선하다. G20으로 어렵사리 추겨세운 국가브랜드는 어쩌란 말인가. 당장 대국민특별담화를 발표해야 하지 않겠는가. 누차 말씀하시는 것처럼 결연히 불법에 대처한다면, 임기 전에 최철원의 척추도 옛 마님 집 도련님처럼 물렁하게 접히는 모습을 눈앞에서 확인하실 수 있을지 모른다.
 
참, 어디까지나 견공을 모시는 견신(犬臣)들의 의견에 따르면 본 기자가 누구를 줘패도 맷값을 주는 한 그것은 양자가 합의한 사항이 된다. 죽지않는 돌고래군이 옆에서 구경하다가 "파이트머니"였다고 증언해줄 것이다. 또한 맷값은 줘패는 측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상대가 아파하면 대당 맷값을 3배 올려주면 된다. 이 논리대로라면 본 기자가 최공(公)을 무릎꿇리고, 입에 휴지를 물린 채 볼이 터지도록 얼굴을 때린 후 알루미늄 배트로 엉덩이를 13대 치고 나서 기분이 풀릴 때까지 따귀를 때려도 된다. 물론 이유따윈, 너님이 알 필요 없다. 

단, 본 기자는 너보다 훨씬 가난하므로 한대당 100원씩을 지급하도록 내맘대로 정한다.
 
왜, 아파?
그럼 지금부터 한대에 300원이다.

<펌글-2010.11.29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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