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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태형 <펌글-2010. 11. 29(너부리)>

백사자|2010-11-30|조회 152
<<태 형>>

1.

41살 처먹은 재벌2세이자 M&M 전 대표 최철원이 탱크로리 화물 기사이자 고3 딸을 둔 53세의 가장을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로 13차례에 걸쳐 빠따를 때린 후, 다시 입에 휴지를 물린 채로 무차별 안면 폭행을 가하고 그 매값으로 현장에서 2천만 원을 결제했다는 것.
 
처음 10회의 빠따까지는 한 대 당 100만원으로, 이후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는 상황이 되자 일종의 위험수당이 붙었는지 한 대 당 300만원으로 인상하여 3차례 더 빠따질을 했다는 것.

고로 100만원짜리 빠따 10회분과 300만원짜리 빠따 3회분에 100만원짜리 안면폭행이 더해져 도합 2,000만원의 파이트 머니(?)가 화물연대 탈퇴를 종용하는 회사의 요구를 거부해 고용승계가 되지 않아 살 길이 막막해져 자신의 탱크로리를 매각하고자 회사에 찾아갔던 한 가장에게 하사된 것이다.
 
게다가 그 현장에는 아마도 고학력, 고임금의 임원진 7, 8명이 동석한 채 회장님의 박력 넘치는 액션활극을 찍소리 없이 감상하였다고 전해지며, 이 사건에 대하여 따져묻는 피해자에게 자기 생각에 너는 이천만원 어치를 덜 맞은 것 같다고 발언한 이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2.
 
김동인의 <태형>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쓰여진 당 작품은 주인공 ‘나’가 5평의 좁은 감방에서 40명이 넘는 동료 죄수들과 함께 지옥과도 같은 여름을 보내면서 발생한 어떤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감옥에 갇힌 ‘나’에게 절실한 건 딱 두 가지다. 하나는 냉수다. 무더운 여름, 마을버스에 에어컨도 없는 상태에서 40여 명이 하루 종일 같이 부대끼는 상상을 해본다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밖에서는 온갖 비장한 대의와 정의로운 명분으로 일제의 검경과 사투를 벌였을 그들이었겠지만 지금 그들의 삶을 의미 있게 해줄 뭔가는 오직 냉수 한 사발뿐이다.
 
몇 도(度)인지, 백십 도 혹은 그 이상인지도 모르겠다.
 
매일 아침 경험하는 바와 같이 동쪽 하늘에 떠오르는 해를 '저 해가 이제 곧 무르녹일테지' 생각하면 그 예상을 맞추려는 듯이 해는 어느 덧 방을 무르녹인다.
 
다섯 평이 조금 못 되는 이 방에, 처음에는 스무 사람이 있었지만, 몇 방을 합칠 때에 스물 여덟 사람이 되었다. 그때에 이를 어찌하노 했다. 진남포 감옥에서 공소로 넘어온 사람까지 설흔네 사람이 되었을때에 우리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신의주와 해주 감옥에서 넘어온 사람까지하여 마흔 네 사람이 될 때에 우리는 한숨도 못 쉬었다. 혀를 채었다.
 
곧 추녀 끝에 걸린 듯한 뜨거운 해는 끊임없이 더위를 보낸다. 몸 속에 어디 그리 물이 많았던지, 아침부터 계속하여 흘린 땀이 그냥 멎지 않고 흐른다. 한참 동안 땀에 힘없이 앉아 있단 나는, 마지막 힘을 내어 담벽을 기대고 흐늘흐늘 일어 섰다. 지옥이었었다. 빽빽이 앉은 사람들은 모두 힘없이 머리를 늘이우고 입을 송장같이 벌리고 흐르는 침과 땀을 씻을 생각도 안하고 먹먹히 앉아 있다. 둥그렇게 구부러진 허리, 맥없이 무릎 위에 놓인 손, 뚱뚱 부은 시퍼런 얼굴에 힘없이 벌어진 입, 생기 없는 눈, 흩어진 머리와 수염, 모든 것이 죽은 사람이었었다. 이것이 과연 아침에 세면소까지 뛰어갔으며 두 시간 전에 점심 먹느라고 움직인 사람들인가? 나의 곤하여 둔하게 된 감각에도 눈이 쓰린 역한 냄새가 쏜다.
 
그들은 무얼 하러 여기 왔나? 바람 불고 잘 자리 있고 담배 있는 저 세상에서 무얼 하러 여기 왔나? 사랑스러운 손주가 있는 사람도 있겠지. 이쁜 아내가 있는 사람도 있겠지. 제기 벌어먹이지 않으면 굶어죽을 어머니가 있는 사람도 있겠지. 그리고 그들은 자유로 먹고 마시고 바람을 쏘이고 자유로 자고 있었을테다. 그러던 그들이 어떤 요구로 여기를 왔나?
 
그러나 지금의 그들의 머리에는 독립도 없고, 민족 자결도 없고, 자유도 없고, 사랑스러운 아내며 아들이며 부모도 없고, 또는 더위를 깨달을 만한 새로운 신경도 없다. 무거운 공기와 더위에 괴로움 받고 학대받아서, 조그맣게 두 개골 속에 웅크리고 있는 그들의 피곤한 뇌에 다만 한 가지의 바램이 있다 하면, 그것은 냉수 한 모금이었다. 나라를 팔고 고향을 팔고 친척을 팔고 또는 뒤에 이를 모든 행복을 희생하여서라도 바꿀 값이 있는 것은 냉수 한 모금밖에는 없었다.(김동인의 <태형> 中)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다리를 뻗고 잘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역시 짐작 가능할 것이다. 고작 5평의 공간에 40명이 넘는 사람이 구겨 넣어진 상태에서는 잠을 잘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교대로 반은 서서 자고, 나머지 반 역시 수십 개의 다리가 서로의 가슴에 크로스 된 상태로 엉킨 채 잠을 자야한다.
 
그래서 작품의 ‘나’는 태형 90대를 언도 받은 같은 방의 칠십대 영감이 이는 죽으라는 소리에 다름 아니라며 나는 죽기 싫으니 공소를 하겠다고 하자 버럭 화를 내며 이렇게 말한다.
 
"여보! 시끄럽소. 노망했소? 당신은 당신이 죽겠다구 걱정하지만, 그래 당신만 사람이란 말이오? 이 방 사십여 명이 당신 하나 나가면 그만큼 자리가 넓어지는 건 생각지 않소? 아들 둘 다 총에 맞아 죽은 다음에 뒤상 하나 살아 있으면 무얼 해? 여보!"
(김동인의 <태형> 中)
 
 
혹여 자신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 있을까 싶어 영감은 주변을 돌아보지만, 이미 지옥의 한 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식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른 사람도 영감을 용서치 않았다. 노망하였다, 바보로다, 제 몸만 생각한다, 내어쫓아라, 여러 가지의 폄(貶)이 일어났다.
영감은 대답이 없었다. 갈게 쉬는 한숨만 우리의 귀에 들렸다. 우리들도 한참 비웃은 후에는 기진하여 잠잠하였다. 무겁고 괴로운 침묵만 흘렀다.
(김동인의 <태형> 中)
 
결국 영감은 일본말을 할 수 있는 ‘나’에게 간수를 불러 공소를 취하해 달라 부탁을 하고, 그 다음 날 ‘나’는 무지막지한 몽둥이질을 당하면서도 기력이 쇠해 우렁찬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꺼져가는 숨처럼 가라앉는 영감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숙여 눈물을 삼킨다.

대략 백년의 시차가 나는 김동인의 소설에서 나는 21세기의 대한민국을 느낀다. 그것도 매우 생생하게. 마치 평행이론처럼.
 
일제시대를 대한민국의 천박한 자본주의 시대로, 냉수와 잠자리를 돈과 직장으로, 태형을 당하는 영감을 알루미늄 방망이로 빠따질 당한 가장으로 대입해본다면 말이다. 게다가 비겁한 ‘나’와 ‘주변 사람들’의 존재는 소름끼칠 정도로 유사해 눈물이 날 지경이다.
 
 
 
오전에 필자는 한 친구와 최철원의 범죄행위에 대해 메신저로 얘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적 합의를 도출하였다.
 
“왜 저런 ㅅㄲ들을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똑같이 대우해줘야 하지? 저런 놈 때문에라도 잠시 동안만 태형을 부활시켰으면 좋겠음.”
 
이라고 말이다. 이왕 태형을 가할 때 엎드린 자세 말고 눕혀서 집행하면 더 좋겠다는 의견도 추가되었다.
 
여러모로 김동인의 <태형>이 오늘 날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할 것이다.
 
 
 
4.
 
사람이 개를 잡아먹을 때, 굳이 개를 거꾸로 매달아 놓고 몽둥이질을 가하는 것은 그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번 재벌2세의 노동자 몽둥이질 사건 역시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노동자의 자존감 따위 재벌들에게는 그저 씹기 질긴 육질에 불과해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태형 <펌글-2010. 11. 29(너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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