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후보 홍길동

나도 한마디

<나는 가수다>에서 나는 가카를 보았다.<펌>

<나는 가수다>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청중 평가단의 투표 결과에 따라 꼴찌를 한 가수가 탈락한다는 서바이벌 시스템을 내세웠음에도, 첫번째 탈락자가 나오면서 스스로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다. 필자도 이 프로그램을 열심히 본 시청자였다. 3회밖에 안 되지만, 그 시간대에 가요 황금기의 명곡들을 들을 기회는 좀처럼 없었던지라, 더군다나 그 유명한 가수들의 에너지를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에 고스란히 받아보기란 실로 오랜만인지라, 첫 주 방송을 보곤 바로 팬이 되고 말았다.

탈락을 둘러싼 비난이 거센 것도 나 같은 시청자가 많았기 때문이리라. 1980~90년대의 한국가요 중흥기를 경험했고, 더 이상은 자주 가요를 듣지 못하게 된 중년의 시청자들 말이다. 모처럼 생긴 관심을 거둘 필요는 없겠고, <나는 가수다>는 여전히 방송될 것이다. 하지만, 실망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마음이 쉬고픈 시간에 현실을 돌이키게 되면 꽤나 피곤하다. 그것도 가카의 모습을.


1.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이 실력 있는 가수들의 노래를 접할 기회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원한다면 <유희열의 프로포즈>를 봐도 좋고, 동영상도 많이 나돈다. 요점은 이런 정도 실력의 7명을 한 자리에서, 고정된 시간대에 볼 수 있느냐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이들이 잔뜩 긴장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느냐에 있다. 게다가 남의 노래를 다시 해석하고 편곡해 부르는 모습은 정말 보기 어려운 기회다. 이런 상황을 만든 건 어디까지나 ‘서바이벌’이라는 형식 때문이다. 떨어졌다고 실력 부족이란 얘기를 들을 군번은 이미 아닌 가수들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자존심에 입는 상처가 더욱 크다.
 
결국 김건모가 탈락자가 되었을 때 모두들 공황 상태가 되어 버린 건, 탈락시 가장 큰 상처를 받을 사람이 왕고참 김건모임을 누구나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창환과의 통화가 변수가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김건모가 결국 재도전을 결정하게 된 것은 이 자존심을 만회하고 싶어서였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김건모에게 비난을 하고 싶진 않다. 프로그램 후반부에 집중 강조했듯이, 깨끗이 물러나는 것보다 재도전이 훨씬 힘든 결정이라는 데 동의한다. 꼭 선배의 눈치를 보지 않더라도, 동료를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다른 가수들이 재도전에 힘을 실어줄 수 있었다고 또한 생각한다. 그 정도의 배려야 인지상정이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가 ‘가수들의 긴장감’ 때문이었다고 하면, 이번 재도전이 긴장감을 누그러뜨릴 것이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그 정도의 프로의식은 있는 이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2.
하지만 사건과 방송은 혼동되어선 안된다. 가수들 간에 벌어진 사건과 방송 내용이 동일하다고 믿는 건 순진한 일이다. 방송은 어디까지나 PD의 책임 하에서 편집되어 보여진다. 그러니까, 이 재도전 사건에 대해 충분히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더라도, 김영희 PD를 위시한 제작진의 견해가 반영된 방송에도 같은 이해심을 보일 순 없다는 뜻이다. 서바이벌 시스템이 가수들에겐 긴장감을 가져다 주었겠지만, 시청자는 그걸 ‘한 명의 탈락’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그건 방송을 통해 누차 강조되어 왔다. 그런데 제작진은 가수들의 긴장감 있는 경쟁이 계속될 테니 말 바꾼 정도는 양해시킬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3회 방송의 후반부를 보면 그런 언급이 몇 차례나 계속된다. 심지어 PD가 직접 얼굴을 비추면서까지.
 
서바이벌 시스템을 통한 탈락은 시청자가 제작진과 가수들에게 요구한 사항이 아니라, 제작진이 시청자에게 해놓은 약속이다. 역시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처음부터 재도전 기회를 마련했다면 시청자들이 실망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일반인 오디션도 아닌데 프로 가수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준다고 납득하지 못했겠는가. 김건모의 노래가 듣기 싫어서 사람들이 비난하겠는가. 제작진이 재도전의 책임을 아주 교묘하게 김건모의 ‘의향’으로 떠넘기면서 혼란이 가중됐지만, 문제는 간단하다. 제작진이 시청자에게 한 공약을 스스로 어겼기 때문에 ‘탈락의 긴장감’을 제대로 배반당한 시청자들의 비난에 시달리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제작진에 있지 가수들에게 있지 않다.
 
500명의 평가단을 마련한 건 제작진이다. 그 수가 충분한지 아닌지, 제대로 모집단인 대중들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제작진은 세대별로, 남녀별로 구분하면서 공정성을 기하려고 애썼다는 표현을 여러 차례 써 왔다. 그것도 결국 낚시가 된 셈이다.
 
제작진은 김건모의 탈락 결과가 립스틱 퍼포먼스 때문이며, 오직 음악 만으로 승부가 가려졌어야 한다고 또한 판단했다. 퍼포먼스와 노래의 평가가 구분될 수 있는 건지는 따질 필요도 없으리라. 그렇다면 윤도현의 1위 평가에서 노래와 퍼포먼스를 따로 구분해내야 하는가? 아예 모두 똑같은 복장을 입히고 같은 밴드만 써야 하는가? 이소라의 찡그린 표정은 평가에 플러스였나 마이너스였나? 이건 논할 가치가 없는 언어유희다. 그럴 거면 박명수에게서 외모와 개그실력을 분리해보든가 말이다.

더 큰 문제는 립스틱 퍼포먼스 자체가 아니라, 구실이 무어든 그 구실을 핑계로, 제작진이 열심히 떠벌인 ‘평가단의 공정한 투표 결과’를 무시해버렸다는 데 있다. 김제동이 이 얘기를 꺼냈을 때부터 조금 위험했다. 김제동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김건모의 탈락이 아쉬웠을 수 있고 그게 본 실력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게 하필이면 음악 외적인 요소였을 수도 있다. 가령 관중이 난입해서 무대가 잠시 엉망이 되고 다시 녹화를 했다고 하자. 그리고 그 가수가 떨어졌다면 누구라도 관중 난입이 악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할 수 있다. 립스틱 퍼포먼스가 그런 요소였다고 안타까워하는 심정까지는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이걸 제작진에게 ‘요구’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제부터는 인지상정을 넘어, 퍼포먼스가 평가단에게 불공평한 영향을 끼쳤다는 걸 공인 받으려는 행동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걸 김제동 개인이 대체 어떻게 판단하는가. 자신의 해석이 500명 평가단의 판단보다 정확하고 옳다는 생각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일반인 평가단은 이 퍼포먼스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퍼포먼스와 음악성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그들은 ‘무지하게도’ 그걸 투표에 반영해 탈락의 결과로 이어졌으니 사후에 보완되어야만 한다! 이런 논리적 연결이 이상한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소라의 소위 ‘깽판’ 발언도 이해된다. 이소라는 김건모의 탈락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때 나온 말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김건모가 7등해서 너무 슬프단 말야’라는 발언이다. 음? 500명 평가단의 판단이 이소라의 판단과 다른 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설마 대중들의 선호도가 음악인들의 평가와 같다고 생각해왔나? 하지만 이소라는 이 결과를 수긍하지 못하고 녹화까지 거부했다. 이것 역시 ‘음악을 아는’ 자신과 ‘음악 문외한인’ 평가단을 구분하는 논리로 해석되며, 더군다나 ‘가장 노래 못하는’ 가수가 따로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위험천만한 발언이며 행동이었다.
 
그나마 이소라와 김제동까지는, 앞서 말했듯 인지상정 때문에 혼란에 빠져 있었다고 감안할 여지가 있다. 당시 무대 상황을 보면 패닉 상태에 가까웠다. <무한도전>에서 늘 분위기 파악 못하고 제 생각이 우선인 박명수인데, 그래서인지 이 상황에선 유일하게 상식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같은 이해관계의 사람들이 다수 모여 있는 상황에서, 그 자리에서만 공유되는 감정이 사람들을 지배하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다.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

그러니 제작진의 문제가 더 커진다. 우선 김제동의 발언 이전에, 립스틱 퍼포먼스가 문제였다는 얘기를 먼저 꺼낸 게 PD였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재도전의 빌미를 먼저 꺼낸 건 제작진이란 말이다. 그런데 왜 제작진은 이후 이소라의 행동과 김제동의 발언을 그대로 내보냈는가? 그건 오로지 재도전 시스템의 도입이 제작진의 의사가 아니었음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PD 자신은 김제동의 제안을 받아 회의했으며, 가수들의 의견이라는 걸 김건모에게 ‘전달’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의 책임까지도 김건모에게 떠넘겨버렸다.

이 방송이 나가기 전에 이미 스포일러가 떠돌았다. 김건모가 탈락돼서 깽판을 놓았고 재녹화를 떴다는 이야기였다. 방송만 보는 우리로서야 그게 사실인지는 모른다. 일단 우리는 방송된 것만 보고 알 뿐이다. 그런데 스포일러가 떠도는 와중에, 백전노장인 ‘쌀집아저씨’ 김영희 PD 앞에서 어떻게 김건모가 떼를 썼겠냐는 의견도 보았다. 필자는 이 스포일러를 개인적으로 믿지 않지만, 그 맥락에는 공감한다. 여기선 약간 상상의 나래를 펴보자.
 
양심냉장고로 한 시대를 풍미했고,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일밤>의 구원투수로 일선 복귀 선언까지 한 김영희 PD다. 그에게 권위가 없다면 이상하다. 그의 경력을 모른다면 <나는 가수다> 3회에 나온 그의 모습만 봐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김건모라면, 그 유명하고 권위 있는 PD가 재도전 의향을 넘겼을 때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이게 하라는 소린가 말라는 소린가 생각해보란 얘기다. 당신은 물론 깨끗이 나가버리는 편이 낫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 생각은 PD도 할 수 있다. 재도전 얘기가 나오는 거 자체가 제작진에게 부담이다. 그러니 이 재도전 제안이 왜 나왔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시라. 만약 내가 재도전한다면 이소라와 김제동의 얘기는 묻힐지도 모르고, 결정의 책임을 넘겨 받았으니 욕은 내가 먹게 된다. 하지만 안한다면, 김제동이야 그렇다 쳐도 위험천만한 소리를 뱉어놓고 방에 틀어박힌 이소라는 누가 수습해야 되겠는가? 저 PD는 이소라를 토닥여 다시 무대에 세울까? 우리가 알기로 이소라는 방송 말아먹는 걸 개의치 않는 사람이다. 만약 이소라가 끝까지 탈락을 수긍 못하면 나머지 5명의 가수는 뭐가 되며 프로그램은 어떻게 되나? 김건모는 아니더라도 그 상황에 있지 않은 제3자라면 그 정도 생각은 충분히 하고 충고할 수 있다고 본다.
 
상상은 끝내자. 김건모에게 공은 넘어갔고, 김건모는 결국 재도전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제작진은 동료가수들, 자문위원 인터뷰에 자막을 덧붙이며 이 재도전이 가지는 의미를 애써 설명했다. 우리가 알듯이, 방송에서 인터뷰 내용을 전부 보여주진 않는다. 어디까지나 제작진의 의도에 부합하는 의견을 보여줄 뿐이다. 어떤 다큐멘터리든 리얼 버라이어티든, 우리는 제작진에 의해 편집된 내용을 볼 뿐이란 걸 다시 상기하자. 우리는 콘서트 녹화중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여기에도 연출은 있지만) <나는 가수다>란 주말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다. 사건 자체에는 인지상정으로 이해할 면이 있으나, 방송에 의해 보여진 사건은 제작진의 의도로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앞서 말한 논란거리들, 즉 이소라와 김제동의 행동은 제작진의 의도에 따라 우리에게 보여진 결과물이다. 평가단의 판단을 무시해버린 그 행동 말이다. 제작진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보여줄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가수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서바이벌 시스템을 기획하고 약속한 건 제작진이다. 가수들은 진심으로 재도전을 원했다고 필자는 믿는다. 하지만 결정권은 김건모에게 있는 게 아니고, 제작진이 떠넘길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결정권은 약속에 따라 애초에 시청자 평가단에게 주어져 있었다. 그걸 무시한 건 제작진이다. 비난은 마땅히 PD를 비롯한 제작진에게 돌아가야 한다.

제작진이 마땅히 받아야 할 비난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필자는 누군가를 떠올린다.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시청자들을 끌어모으려 한 건 누구인가. 500명 평가단에게 투표를 하게 한 건 누구인가. 그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건 누구인가.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가수들에게 긴장감을 조성하게 한 건 누구인가. 그리고 립스틱 퍼포먼스가 문제였던 것 같다는 말을 꺼내고, 이소라의 돌출 행동을 보여주고, 김제동의 발언을 이끌어내며, 김건모에게 재도전 결정을 넘긴 것은 누구인가. 자문위원과 가수들의 부연설명 인터뷰를 따낸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화면 밑에 ‘형평성’ 차원에서 그랬다고 확언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는 형평성이 무언지도 모르는 사람들인가. 약속이 무언지도 모르는 사람들인가. 제발로 걸어가 그 누구의 의도대로 투표해주고, 결국 퍼포먼스와 음악성도 모르는 자들로 치부되어도 좋은 사람들인가.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이게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비난을 들어도 뚜벅뚜벅 우직하게 가겠다는 그 태도. 옳다고 여겨지면 투표에 참여한 사람들과 프로그램을 보아준 시청자들의 의견은 어쨌든 결국 수용하지 않겠다는 그 태도.
 
필자는 여기서 가카를 보았다.
 
그건 재도전의 도입이 틀려서가, 싫어서가 아니다. 재도전의 도입이 결국 대중에 대한 배신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불러들인 평가단의 결과를 놓고도, 그걸 외면한 짓이 좋은 프로그램을 위해서라며 애써 설명하려는 그 꼴이 독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이라면, 내 입으로 말한 공약이라도 맘대로 원점부터 재검토하는 게 당연하며, 4천만이 반대하더라도 신념을 지키기 위해 삽으로 난 그 길로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김영희 PD 한 사람의 일은 아닐 것이다. 그가 나쁜 사람이어서도 아닐 것이다. 옳은 길이라면 비난을 감수하며 가겠다는, 사람들을 낚시질해도 할 수 없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있다. 내가 옳기 때문에 나는 민주주의를 외면한다.
 
사람들의 의견이 다르다면 옳다고 여기는 것이라도 포기해야 하는, 그런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다. 우리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김영희 PD는 우리들 중 하나일 뿐이다.
 
가카께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이유는 우리들의 죄 때문인 것이다.



<딴지일보 아홉친구 글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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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세상살이

등록일201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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