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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일 크레인시위 김진숙동지 응원하러... 시민들 '희망버스'가 갔다

5대집행부|2011-06-13|조회 6,603
» 힘내세요.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제85호 크레인에서 158일째 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오른쪽 위 두 팔을 든 사람)이 12일 오전 자신을 응원하러 ‘희망버스’를 타고 전국 곳곳에서 모여든 1000여명의 시민·노동자들이 인간띠를 만들어 바람개비를 크레인에 붙이는 동안 손을 흔들어 답례의 인사를 하고 있다. 부산/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서울의 한 대기업 인사팀에서 일하고 있는 김아무개씨는 11일 홀로 ‘희망’을 찾아나섰다. 이날 저녁 6시30분, 김씨는 서울시청 광장 인근 재능교육 비정규직 농성장에서 버스에 올라탔다.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로 향하는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의 버스’ 4호차다. 영도조선소엔 사쪽에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35m 높이 85호 크레인 위에서 12일로 158일째 고공시위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있다.
“회사에서 비정규직 관리일을 해요. 그래서 여기에 오는 게 쉽지 않았어요. 일을 하면서 비정규직이 나쁘다는 걸 절실하게 느껴요. ‘희망버스’ 행사를 알았을 때, 마음이 뭉클했고요. 그래서 그냥 왔습니다.” 동승자들에게 김씨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4년째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을 다친다고 했다. 꼬박 2년을 일한 계약직 안내데스크 여직원이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회사를 나갔을 때 그랬다. “회사 안에 그분과 친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거예요. 직원들도 그 자리가 때 되면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니까 신경을 안 쓰는 거죠.”

4호차를 탄 44명은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대가 폭넓었으나, 마음 씀씀이는 어딘가 닮은 꼴이었다. 그들은 종종 “좋은 일에 머릿수라도 보태고 싶다”고 했고 “김진숙 지도위원을 보고 싶었다”고도 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나 노동운동 활동가뿐 아니라 혼자서 혹은 친구·선후배와 함께 버스를 올라탄 이들도 꽤 있었다. 늘 그들만의 투쟁이었던 노동운동에 ‘신선한 외부세력’이 끼어든 셈이다.

서울뿐 아니라 전주·순천·수원·평택 등에서 출발한 ‘희망버스’는 12일 0시가 넘어 750여명의 참가자를 영도구 봉래시장에 내려놓았다. 이들은 부산 시민들에게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노동자와 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촛불을 들었다. 도로에 들어서자 경찰은 ‘불법집회’라며 행진하려는 이들을 막아섰다. 백발의 백기완 선생이 행렬 맨 앞으로 나섰다. 대치하기를 20여분, 조선소로 가는 도로 1개 차선이 열렸다.

촛불은 희망의 눈물로 번졌다. 한진중공업 노동자 아내들은 조선소 앞에서 촛불을 향해 ‘고맙습니다’라는 펼침막을 흔들며 울고 또 울었다. 조선소로 통하는 문은 철옹성이었다. 12일 새벽 1시 반, 촛불 행렬이 서 있던 인도 바로 옆 4m 높이의 조선소 담벼락으로 10여개의 사다리가 내려왔다. 조선소 안에서 파업중인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준비한 이 사다리를 타고 참가자들은 조선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뒤늦게 상황 파악에 나선 경찰들이 사다리를 빼앗으려 나서면서 산발적인 충돌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한명이 실신해 병원에 실려갔다. 컨테이너로 봉쇄된 정문 쪽에서도 노동자들과 회사 쪽이 고용한 용역 직원 간에 충돌이 일어났다. 회사 쪽에 따르면 용역 직원 20여명이 다쳤고, 노동자들도 부상을 입었다.

참가자들은 새벽 3시가 넘어서야 35m 높이 크레인을 올려다보며 환호할 수 있었다. 158일간 홀로 있던 김진숙 지도위원과 어렵게 만난 순간이다. 김 지도위원이 저 높은 곳에서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가자 여기저기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들은 또다시 웃었다. 새벽 4시가 넘어 트위터를 통해 모인 ‘날라리 외부세력’ 공연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도, 연대를 위해 온 쌍용차 노동자도,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행사 준비에 동분서주했던 송경동 시인도 어울려 한바탕 춤을 췄다.

오전 11시께, 배우 김여진씨와 다른 참가자 5명이 미리 조선소를 빠져나오던 중 경찰에 붙잡혔다 풀려났다. 경찰은 오전 한때 조선소 주변을 에워싸고 참가자 연행을 고려했으나, 오후 들어 방침을 바꿔 참가자의 귀가를 보장했다. 한 참가자는 ‘희망버스’가 떠난 이후를 걱정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 더 거세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송경동 시인은 “이번 행사를 통해 새로운 연대의 싹이 트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만약 한진중공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더 많은 희망버스를 보내자”고 제안했다.

해산하기로 한 오후 3시. 조선소 밖으로 나가는 문이 열렸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일렬로 서 돌아가는 참가자들을 향해 손뼉을 치며 배웅했다. 김 지도위원도 양손을 흔들었다. 자꾸만 위를 올려다보며 손을 흔들던 참가자들은 울면서도 웃고 있었다. 85호 크레인에도,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이들의 마음속에도 ‘희망의 꽃’은 그렇게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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