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후보 홍길동

현대차 자녀 채용 특혜 요구에 대한 세밀한 시선 - 하종강

고된 일과를 마친 뒤 술을 몇 잔 걸쳐 불콰해진 얼굴로 참석한 사람들이 거의 절반은 돼 보이는 자리였다.

50대 후반에 속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강의가 끝나고 이어지는 질문 내용들이 좀 이상했다.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노동문제에 대해 받아보지 않은 질문이 거의 없는 편이어서 대상에 따라 질문 내용을 미리 짐작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강의 내용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대학생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많이 한다.

며칠 전 강의가 끝나고 받은 대학생 질문지 내용을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옮기면 다음과 같다.


“노조가 결성돼서 자신들의 요구를 하고 기업이나 정부가 들어준다면, 노조는 더욱더 무엇을 바랄 텐데 안 들어주면 또 파업을 할 것이고 그러면 생산성이 떨어져 나라의 소득이 줄어들 텐데 이건 처음 노조의 뜻과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학생이 “처음 노조의 뜻”을 그나마 긍정적으로 표현한 것은 한 시간 반가량에 걸친 내 강의에 대한 예의였을 것이다.

5월을 맞아 광주 망월동을 찾은 ‘소수 불순’ 대학생들 중에서 나온 질문이니 보통 대학생들 대부분의 생각이 그렇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초·중등학교 제도권 교육에서 위와 같은 의문에 대한 해답이 일찍이 마련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제도권 교육과 언론이 오히려 위와 같은 의문을 학생들 머리 속에 심어준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평생 노동자로 살아온 50대의 노동자들이 질문을 하면서 항의하듯 거칠게 말하는 것이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강사를 노동부 관리쯤으로 오해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아차 싶었다. 오래 전, 그런 노동자들을 자주 만나던 때가 있었다.

노동부와 노동조합조차 구별하지 못하고 ‘노동’이란 단어가 붙은 곳은 모두 한 통속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여전히 그런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하는 활동가들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던 거다.


이렇듯 사람들이 노동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좀 더 세밀한 시선이 아쉬울 때가 많다.

얼마 전 크게 소동을 빚었고 아직도 계속 진행 중인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자녀 채용 특혜 요구 문제도 좀 그렇다.

많은 사업장에서 이미 소리 없이 시행되고 있는 제도가 왜 유독 현대차 노동조합에서만 문제가 됐을까?

절반 가까운 조합원들이 그 조항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세태에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 사실에 주목하고 그 절반 가까운 조합원들이 앞으로 더 많아지도록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비난의 목소리만 높았다.


생산직 노동자를 엄정하게 공채로 채용하는 기업체가 우선 많지 않다.

상당수 사업장에서 생산직 노동자들은 회사 관리자들의 추천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채용된다.

현장 초급 관리자들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어용노조 간부까지 끼어들어 이권을 나누는 곳도 적지 않다.

사실 “대부분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만 정확한 자료가 없어 억지로 참고 있는 중이다.


흔히 ‘민주노조’라 불리는 노조가 활동하는 사업장에서 그런 통로로 취업한 노동자들은 반노동조합 정서를 갖게 된다.

쟁의행위가 발생하면 취업할 때 끈이 돼 준 소개자들은 파업대오에서 조합원들을 빼내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노동조합을 파괴하는 반조직의 주요 구성원이 되기도 한다.


현대차 노조처럼 단체협약에 명문화할 경우 주목을 받게 될까봐 이면합의로 시행하는 기업들도 많다.

더 심각한 경우는 노조 모르게 회사가 쉬쉬하면서 충성도 높은 직원 자녀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관행이 정착된 기업들이다.

그렇게 취업한 신입 직원들만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해 본 적도 있다.

노동조합이 그 신규 직원들 교육 시간을 따내는 것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혜택을 묵인한 노조가 어리석다고 탓하겠지만, 그에 맞서는 싸움을 할 수 있을 만큼 조직력이 있는 노조라면 처음부터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현대차 노조의 자녀 채용 특혜요구는 명백히 잘못된 일이다.

비정규직 고통을 나몰라라하는 ‘정규직 세습’이라 규탄 받아 마땅하다.

그러한 비난이 단체협약 해당 조항의 타결을 막는데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정의감에 가득찬 비난으로 자신의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보다 더 말이 안 되는 불공정한 관행에 대해 입 닫고 있었던 우리들 스스로의 부족함에 대해서도 생각을 좀 해봐야 한다.


<경향신문> 2011-05-10 하종강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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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제5대집행부

등록일201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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