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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 않은 사람' 특수고용노동자 ‘박종태열사’ 2주기 추모제!

제5대집행부|2011-04-29|조회 6,105
'특별하지 않은 사람' 특수고용노동자 ‘박종태열사’ 2주기 추모제!

● 일시: 2011년 4월30일(토) 10시30분 ● 장소: 대한통운대전지사 건너편(자결장소)

[보도자료] 첨부1. 식순 및 열사 이력 첨부 2. 열사 유서 중 일부

1. 민주노총 대전본부는 2009년 대한통운 자본과 경찰 탄압에 맞서 특수고용노동자의 처지를 사회에 고발하고 자결한 박종태열사 2주기 추모제를 진행한다.

당시 박종태열사의 자결은 두달여 동안 계속된 경찰과의 대규모적인 충돌속에 노무현전대통령의 서거 상황과 맞물려 대전시민들에게 크나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민주노총은 물론이고 대전지역 진보정당과 시민사회 진영은 대전지역 열사대책위를 건설하여 지속적인 촛불집회와 선전전을 진행한 바 있으며 대전시민들의 지지속에 투쟁을 마무리 할수 있었다.

민주노총대전본부는 이번 추모제를 통해 200만명에 달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과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열사정신 계승과 투쟁 의지를 다진다.

2. 당시 열사의 죽음에 화물연대는 투쟁본부체제로 전환하고,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운수노조, 화물연대, 민주노총 대전본부, 민주노총 광주본부는 박종태 열사 투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힘든 조건 속에서도 50여일의 투쟁으로 38명 조합원들의 복귀 등을 합의하고 2009년 6월20일 오전 9시 대전 중앙병원 발인, 11시 대한통운 대전지사앞 영결식, 오후 3시 광주지역 노제(1지회 사무실→지부사무실→자택→대한통운 광주지사), 오후 5시30분 광주 금남로 노제, 오후 8시 망월동 구묘역에서 장례를 진행 한 바 있다.

3. 박종태 열사의 자결은 택배노동자의 현실과 노동기본권 보장과 화물운송제도 개선을 사회문제화 시켜 냈으며 금호아시아나그룹 및 대한통운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정부의 불편부당한 법집행에 대한 항의와 시정을 요구했다.

당시의 대한통운(금호그룹)의 문제는 최근의 금호그룹 부실문제를 노동자에게 떠넘기며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있는 금호타이어의 상황을 상기 시키고 있기도 하다.

<첨부1> ‘특별하지 않은 사람’ 특수고용노동자 박종태열사 2주기 추모제

-일시: 2011년 4월30일 (토) 10:30

-장소: 박종태열사 자결 장소(대한통운 대전지사 도로 건너편)

-주최: 대전민중단체연석회의, 화물연대 대전지부

-주관: 민주노총 대전본부

● 식순

-묵념

-임을 위한 행진곡

-열사 약력소개 및 경과보고

-추모사 1 - 민주노총 대전본부장

-추모사 2 - 화물연대 대전지부장

-추모사 3 - 진보정당 및 사회단체

-추모의 노래 - 민들레 꽃처럼

-헌화


박종태열사는 1971년 11월16일(주민등록상으로는 1972년 11월16일)에 태어났다.

광주 양산초등학교, 양산중학교, 서강고를 졸업하고 1990년 부산수산대(현 부경대)에 입학했다.

-열사는 화물연대 광주지부 1지회장으로 대한통운자본의 일방적인 해고에 맞서 투쟁하다가 자신의 목숨을 던졌다.

열사는 2009년 1월, 그 당시 건당 920원하던 수수료를 30원 인상해 2월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대한통운자본과 구두 합의했다.

그러나 회사는 대한통운 본사에서 수수료 40원이 인하돼 30원 인상합의를 없던 것으로 하겠다고 일방 통보했다.

-노동조합은 회사의 일방적인 합의 파기에 대한 항의로 계약서상 회사에서 하기로 돼 있던 택배물 분류작업(그때까지는 수수료 없이 노조가 진행함)을 거부했다.

3월16일 노조의 택배분류작업 거부에 회사는 오전 11시 ‘근무지 이탈’이라며 12시까지 미복귀시 전원해고할 것을 문자로 전송했다.

조합원들이 굴하지 않자 회사는 오후 3시경 택배노동자 전원에게 오후 6시까지 복귀할 것을 명하고 위반시 해고할 것을 문자로 통보했다.

-3월17일에는 내용증명우편으로 해고를 통지했다.

‘집단해고 철회 및 임금지급 중지 철회’를 위한 투쟁 가운데 박종태 지회장과 36명의 택배조합원들은 공권력과 사측의 탄압에도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에서 농성 투쟁을 전개했다.

이 와중에 2009년 4월30일 박종태 지회장은 ‘대한통운은 노조탄압을 중단하라’는 현수막을 걸고 자결하고 말았다.


<첨부2> 박종태열사의 유서 중에서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들이 투쟁의 제단에 재물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동지들을 희생시킬 수 없습니다. 동지들을 잃을 수 없었습니다.

저의 육신이 비록 여러분과 함께 있진 않지만, 저의 죽음이 얼마큼의 영향을 줄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악착같이 싸워서 사람대접 받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큰 나라를 반토막내서 배부르고 등따신 놈들 미국과 극우보수꼴통들이 이번 참에 아예 지네들 세상으로 바꿔 버릴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는 실종된 지 오래됐고 반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죽음을 강요하거나 고분고분 노예로 살라고 합니다.

그 속에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안락만을 위해서 투쟁할 것이 아니라 통 큰 목적을 가지고 한발 한발 전진하기 위해 손을 잡고 힘을 모으는 적극적이고 꾸준한 노력과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노동자의 생존권, 민중의 피폐한 삶은 사상과 정견을 떠나서 무조건 지켜져야 하고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기득권을 버리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합니다.

우리 민중은 이론가가 아니지 않습니까.

저의 죽음이 세상을 바꿀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최소한 화물연대 조직이 깨져서는 안 된다는 것. 힘없는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린 지 43일이 되도록 아무 힘도 써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하기 위해 선택한 것입니다.

눈을 감으면 깜깜할 겁니다. 어떻게 승리하는지 저는 보지 못할 겁니다.

그것이 아쉽고 억울합니다.

꼭 이렇게 해야. 이런 식의 선택을 해야 되는지. 그래야 한 발짝이라도 전진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속상하고 분합니다.

이름을 거론하자니 너무나 많은 동지들이 떠오릅니다.

저를 이만큼 건강한 간부로 활동가로 있게 해 준 소중한 분들, 저를 믿고 따라 준 형님, 동생, 친구들이 의미 있는 투쟁, 힘겨운 투쟁에 끝까지 남아준 동지들 모두가 저에겐 희망이었습니다.

광주라는 곳도 사랑합니다.

날고 싶어도 날 수 없고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가 행복하고 서로 기대며, 부대끼며 살아가길 빕니다.

복잡합니다. 동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면서, 그 속에 저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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