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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사다리를 걷어치워라! <펌>

<<서남표 총장에게 답한다 : 죽음의 사다리를 걷어치워라!>>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위와 같은 기사를 보았다. 오, 서남표 총장이 사과를? 최근에 연이어 일어난 자살사고에 뭔가 깨달은바가 있었나보군. 카이스트도 이제 좀 변하는 건가?
이런 순진한 마음 +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클릭했다.

근데 화면에 뜬게 앗, 젠장 중앙일보다.
똥밟은 심정이지만 그래도 일단 내용은 읽어보았다.

<<서남표 KAIST 총장은 5일 최근 잇따른 학생들의 자살과 관련, “고인의 가족, 친구 그리고 국민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KAIST에서는 1월 8일 1학년 조모(19)군이 성적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올해 들어 학생 3명이 자살했다.

서 총장은 이날 KAIST 사이트에 올린 ‘KAIST 가족 여러분께-A message from the President’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올해 KAIST는 유난히 슬픈 사건을 많이 겪고 있다”며 “우리가 좀 더 많은 노력을 했다면 소중한 생명을 잃는 비극적인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서 총장은 “KAIST나 하버드대 같은 대학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이들 대학의 명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쉬운 일”이라 고 밝혔다. 그는 “KAIST는 학사, 상담, 생활, 학비 문제 등 학교가 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 걸쳐 개선할 점이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 총장은 앞으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운영하고 있는 ‘즐거운 대학생활’이라는 프로그램을 도입, 신입생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등 자살 방지 예방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중앙일보  |김방현 >>


음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군, 하면서 무심코 넘어가려 했지만, 뭔가 좀 구린 냄새가 났다. 그래서 같은 내용을 다룬 다른 신문의 기사를 살펴보았다.

헐.......

역시나 편집의 달인 중앙일보. 중요한 대목을 빼놓으셨다.
빠진 부분은 아래와 같다.

<<그(서남표 총장)는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있는 일류 대학의 경우 개교 이래 학생들의 자살 사건은 계속 있어왔고 명문대학의 학생들은 남보다 더 잘하기 위해서 경쟁하고 있다"면서 "게다가 KAIST 교수님들의 학문에 대한 원칙과 학생들에 대한 높은 기대로 학생들은 학업에 대한 부담감을 많이 갖고 있고 학생들 스스로도 취업 등을 준비하면서 재정적인 압박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KAIST나 하버드 같은 대학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이들 대학의 명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쉬운 일"이라면서 "학생들은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많이 갖고 있겠지만 이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대가이며 그 무엇도 공짜로 얻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KAIST는 학사, 상담, 생활, 학비문제 등 학교가 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 걸쳐 개선할 점이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우리들 각자의 마음과 자세에 달린 만큼 미래의 성공을 위해 지금의 실패와 좌절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 박주영 >>


사과?
저딴 걸 사과라고 부르는가?
중앙일보는 국어사전을 따로 만들었나보다. 저런 걸 사과라고 하는 걸 보니 말이다.
진정성도 없고, 반성도 없고, 죽은 학생들에 대한 제대로 된 공감도 없고, 무엇보다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개념조차 없다. 근데, 저런게 사과라고?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있는 일류 대학들은 개교이래 학생들의 자살 사건이 계속 있어왔다고?
그건 그렇다. 서울대도 그렇고, 미국의 명문대들도 그러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걸로 카이스트의 자살사고도 있을 수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싶었던 걸까?

명문대학의 학생들이 남보다 더 잘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경쟁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이니 받아들이고 "궁극적인 해결책은 우리들 각자의 마음과 자세에 달린 만큼 미래의 성공을 위해 지금의 실패와 좌절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조언(?)을 지금 우리보고 귀담아 들으라는 건가?

참담하다. 이게 우리나라 최고의 교육기관의 수장으로 있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니.

서남표 총장과는 반대로, 같은 카이스트 출신의 정재승 교수는 이번 자살사고를 두고  그나마 진정어린 걱정과 조언을 내놓았다.

정재승 교수는 29일 자신의 트위터에 "어제 우리학교 학생이 자살을 했습니다. 올해 들어 벌써 세번째. 학교가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라고 글을 올리며 최근 벌어진 학생들의 자살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정 교수는 이어 "이번에도 근본적인 대책없이 넘어갈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이라고 덧붙이며 "학교는 '우정과 환대의 공간'이어야 한다. 그안에서 학생들이 학문의 열정과 협력의 아름다움, 창의의 즐거움을 배울수 있도록 장학금제도를 바꾸고, 교수-학생,학생-학생간의 관계를 개선해야한다. 카이스트가 "질책이 아닌 격려의 공간"이 되길"이라고 자신의 바람을 피력했다.

또 정 교수는 "카이스트 학생들에게,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와 경쟁의 압력속에서 삶의지표를 잃은 학생들에게 교수로서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 뿐 입니다. 학생들의 일탈과 실수에 돈을 매기는 부적절한 철학에 여러분을 내몰아 가슴이 참담합니다. 힘들 땐 교수들의 방문을 두드려주세요. 제발"이라며 학생들에게 미안함과 동시에 당부의 말 또한 전했다. 마이데일리 | 유영록 >>

정재승 교수가 바로 보았다. 문제의 본질은 경쟁에 경쟁을 거쳐 카이스트라는 최고의 교육기관에 입학한 인재들조차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와 경쟁의 압력 속에서 삶의 방향을 잃고 목적을 잊고 부적절한 철학에 내몰려 자살이라는 이름의 사회적 타살을 당하게 된다는 점이다.

아쉬운 점은, 정교수가 참담한 가슴으로 한 말이 겨우 "힘들 땐 교수들의 방문을 두드려주세요. 제발"의 수준이라는 것이다. 뭐, "서남표는 물러나라!"라고 말하긴 쉽지 않을테니 이해는 간다. 하지만, 학생들이 교수들의 방문을 두드릴줄 몰라서 안 두드리는걸까?

어차피 말해도, 이제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기준에 의해, 평가에 의해 다른 누군가와의 경쟁에 내몰리는 것이 지쳤다고 말해도, 그 무엇도 바뀌지 않으리란 절망이 가슴에 가득차 있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 죽는가?
욕망을 잃었을 때 죽는다.
더 이상 상승하려는 의지를 잃었을 때 죽는다.
빛이 바래어서 죽는다. -김동렬-


경쟁으로는 인간을 상승시키지 못한다.
2등까지는 어떻게든 바둥바둥거리며 올라가게 하지만, 결코 최고의 자리엔 오르진 못한다.
경쟁력이 떨어져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자리는 비교를 불허하는 존엄의 경지이기 때문이다.

경쟁을 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한다는 것이며, 비교할 때의 그 기준은 내 안의 것이 아니라 바깥의 것을 빌어다 쓴다. 바깥의 자를 빌어쓰는한 그는 영원히 비교를 '당한다'. 운이 좋아 반에서 1등을 하면 전교 1등이 기다리고 있고, 전교 1등하면 그다음엔 시군구 1등, 그 다음엔 도내 1등, 그 다음엔 전국 1등, 그 다음엔 세계 1등, 그 다음엔 우주 1등, 그 다음엔? 하느님이랑 1등 자리 두고 맞짱 뜰건가?

그 전에 인간은 죽고 만다. 아득바득 사다리 윗단까지 올라가려 하지만, 그 위엔 자신이 찾던 빛나는 별이 없음을 알기에 그만 절망하여 죽고 만다. 허무해서 죽는다.

경쟁을 열렬히 지지하는 하비 루벤 같은 사람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쟁을 하는데 뛰어난 많은 사람들이 그 목표를 달성하고......
사회적, 경제적으로 더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오히려 목표가 멀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승리가 사실 공허한 것임을 알게 되는 순간이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경험하는 가장 충격적인 일이 된다." -책 경쟁에 반대한다 151쪽-

애당초 인간의 상승 의지는 공동체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는데서 나온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가족의 중심에 서고
친구들과의 우정의 세례를 흠뻑 받으며 무리의 중심에 서보고
동료들과 열정적으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력하면서 일의 중심에 서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 위험이 닥치면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서서 역사 앞에 거룩한 분노를 실천해 사회의 중심에 서고
공감을 확장시켜 마침내 전체 생물권까지 감싸안아 '풀한포기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상의 가운데에서 사랑을 실천하는데서 진정한 상승 의지가 나온다.
 
그러나 경쟁은 결코 상승의지를 낳지 못한다. 경쟁으로 가능한 것은 겨우 상승 의지라는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이의 그림자만 쫓는 것일뿐.

누가 더 그림자에 가깝게 갔는지를 논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사다리의 윗단까지만 갈 수 있을 뿐. 사다리를 타고 별을 딸 순 없다. 

별은 감히 사다리로 닿을 수 없는 높이에 있다. 그 별은 인간의 가슴에 상승하려는 의지로 빛나고 있으며, 그 빛이 바랠 때 인간은 죽는다. 그 빛을 기어코 죽이려는 자들이 있다. 서남표 총장은 그들중 하나일 뿐이다. 그들은 사다리 윗단에 서서 아랫단에서 열심히 기어오르는 자들을 향해 말한다.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
"경쟁은 인간의 본성이야""경쟁을 피하는 자는 경쟁을 두려워하는 거야"
"열심히 경쟁하면 너도 사다리 윗단에 오를 수 있을 거야"
"경쟁을 이겨내면 너는 강해질 거야"
.........
 
그렇게 <낡은 세상 Old World>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안다. 젊을수록 더 잘안다. 나이든 사람들이 아무리 이 미친 세상을 정당화하려 애를 써도, 아직 영혼의 촉수가 살아있는 아이들은 온몸으로 느끼고, 온몸으로 절규하고, 마침내 온몸을 던져 자신의 촉이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만다.
 
세상은 원래 그렇지 않으며, 경쟁은 인간의 본성도 아니고, 경쟁이 두려워서 경쟁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더 나은 방법이 있기 때문에 경쟁할 필요가 없는 것이며, 열심히 경쟁하면 사다리 윗단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사다리 아랫단에 있는 사람들을 짓밟는 것이며, 경쟁을 이겨내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안의 진정한 상승 의지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서남표 총장은 말했다, 앞으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운영하고 있는 ‘즐거운 대학생활’이라는 프로그램을 도입, 신입생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등 자살 방지 예방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그래, 그것도 필요한 일이다. 상담 전문가들, 정신과 의사, 임상 심리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자살방지예방책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진짜 예방책은 따로 있다.
 
바로, 서남표 총장, 당신이 나가는 것이다.

당신이 나가고 그 자리에 '경쟁'이 아닌 '배움을 향한 열정을 바탕으로 교수/학생, 학생/학생 간의 협력을 통한 집단지성의 구축'을 토대로 한 진정한 학문 공동체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지닌 사람이 들어와야 한다.
 
학점 따위로 인간을 길들이려 하는 자는 필요없다.
장학금이란 푼돈으로 인간을 개처럼 만들려는 작자는 필요없다.
그런 식으로 자살은 예방되지 않는다.
 
우리가 자살하는 사람들에게 "힘을내렴, 세상이 원래 그렇단다. 그러니 어떻게든 힘을 내서 잘 살아보자꾸나" 식의 메시지를 던지는 한,
그들을 둘러싼 환경의 진정한 변화없이 개인의 변화를 요구하는 한,
절망은 계속되고, 자살도 계속된다.
 
대부분의 자살은 사회에 의한 타살이다. 자살은 공동체의 책임이다. 공동체의 중심으로 어떻게든 나아가려는 한 개인의 마음에 학벌, 인종, 성별, 계급, 성적 등 온갖 콘크리트벽을 쌓아 옴짝달짝 못하게 만들면, 그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타살이다.
 
서남표 총장에게 말한다. 당신의 노력이 부족해서, 카이스트 구성원들의 노력이 부족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당신들이 너무나 열심히 일해서, 너무나 열심히 학생들을 못살게 들볶아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다. 그러니 제발 노력하지 말아라. 사다리를 열심히 정비해서 미끄러져서 죽거나 다치는 학생이 없게 하겠다는 식의 개혁은 때려치워라.
 
그냥 죽음의 사다리를 당장 치워버릴 것은 권한다.
아니, 권한다는 말은 너무 약하다.
지금 당장, '경쟁'이라는 죽음의 사다리를 치워라!


< 딴지일보 lpvisionary님 글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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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제5대집행부

등록일2011-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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