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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50살 용접공 김진숙씨 “약자 외면한 노동운동 죽은 것”

50살 용접공 김진숙씨 “약자 외면한 노동운동 죽은 것”

ㆍ24년 만에 복직 결정 받아…기다린건 대규모 구조조정
ㆍ“노점상·농민을 모른 체하는 노조운동 스스로 고립돼”

26일,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공장 앞. 민주노총 김진숙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50)이 단식농성을 하고 있었다. 지난 13일 시작했으니 벌써 14일째다. 차디찬 인도블록 위 텐트 안에는 조그만 열풍기와 생수 두어 병, 그리고 전기담요와 이불이 고작이다. 굶주린 탓에 손발과 가슴뼈가 앙상해졌다. 입술은 거칠게 갈라졌고, 얼굴은 검게 변했다.
“오늘 아침, 텐트 옆 버스승강장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리던 아가씨가 손에 사과를 들고 있었어요. 어찌나 먹고 싶던지 당장 달려가 빼앗고 싶더군요.”

왜일까. 무엇 때문에 나이 쉰의 여성이 이토록 차디찬 길거리에서 단식투쟁에 나선 것일까.

굴곡진 삶의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29년 전인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막 소녀 티를 벗은 20살 때 한진중공업(옛 대한조선공사) 작업현장에 투입됐다. 남자들만 우글거리던 현장에서 미혼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용접공이 되었다.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꿈은 5년 만에 산산조각이 났다. 86년 인사발령 거부를 이유로 해고된 것이었다.

“노조 대의원에 당선된 뒤 내부 비리를 폭로하자 사측이 보복성 인사발령을 냈어요. 전 그저 인간다운 대우만 받기를 원했던 것인데…. 그런데도 마치 좌익용공 빨갱이 보듯했어요.”

24년이 흐른 지난해 11월, 민주화운동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명예회복과 부당해고 결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 결정은 법적인 구속력이 없었다. 복직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11월30일부터 출근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더 지독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한진중공업) 측이 정리해고 1000명을 포함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강행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출근투쟁은 곧 단식농성으로 바뀌었다.

“‘큰일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안위는 아무 문제도 아니구나하는 생각…. 1000명 선의 정리해고요? 그것도 어쩌면 큰 문제가 아니죠. 2000명에서 3000명에 이르는 비정규직들은 정말 생존권이 걸려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식농성뿐이라는 판단이 들었어요.”

잠시 눈을 감는다. 새삼 명예퇴직과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2003년 상황이 떠오른다. 129일간 크레인에 올라가 투쟁하다가 목숨을 잃은 김주익, 도크에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난 곽재규씨 등이 눈에 선하다.

“지금 생각해봐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김주익·곽재규씨…. 그리고 작년 5월 소주 한 병과 통닭 한 마리를 들고 산으로 올라간 대한통운 박종태씨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요즘 들어서는 숨막히는 정적이 흐르는 새벽이 가장 두렵다.

“공포 때문이죠. 사측이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하는 즉시 어떤 사단이 일어날까에 대한 두려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노동운동과 관련해서도 쓴소리를 서슴지 않는다.

“노동운동이 과거 십수년간 많이 변질됐어요. 노동운동의 시발점은 세상과, 그리고 약자와 함께하는 겁니다. 그런데 90년대 후반부터 대기업 중심의 노동운동이 되면서 연대가 잘 되지 않고, 그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분위기가 고착화하고 있어요. 노조 내부적으로 패권 다툼만 더해지고 있고…. 비정규직, 노점상, 농민, 철거민을 모른 체하는 노동운동은 소외될 수밖에 없어요. 연대하지 않는 노동운동은 죽은 겁니다.”

그는 “촛불시위는 대중화했는데 최근의 노동운동은 세상과 담 쌓고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으며, 이는 대중의 역동성, 운동의 진정성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부산 | 백승목 기자>


입력 : 2010-01-26 18:24:20ㅣ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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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0-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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