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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소식

김진숙 지도위원 이소선 어머니 추모사

제5대집행부|2011-09-07|조회 6,792
희망버스 타고 가서 진숙이 만나고 싶다 하시더니 결국 이렇게 오셨습니까?
희망버스 타고 가서 해고된 한진 노동자들 보고 싶으시단 말씀이 결국 유언이 되고 말았습니까?

어머니 쓰러지시기 전, 두 번이나 전화를 하셔서 오시겠다는 걸 곧 내려가서 뵙겠다고 못 오시게 했던게 이렇게 후회가 될 줄 몰랐습니다.
억울한 노동자들이 있는 곳이면, 노동자들이 싸우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시던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마저 싸우는 노동자들을 이 먼 곳까지 찾아 오셨습니까?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20세기 말,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숨져간 열사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여의도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 하실 때 그 추운 겨울 천막 안에서 어머니 아버지들이 라면을 끓이고 계시더군요.
라면보다 더 많은 약을 드시면서 매일 뜯겨나가는 천막을 붙잡고 422일을 싸우셔서 만들어진 법안에 의해 제가 마침내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인정을 받고 부당해고와 복직 결정까지 받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감사드린다는 제 인사에 어머니께선 ‘니들이 또 열심히 싸우면 니들 후손들이 혜택을 보고 살것지’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것은 다 내주고 이 땅 노동자를 위해 사셨던 분,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노동자는 단결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던 말씀은 어머니 삶에서 나온 평생의 철학이었고 지혜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미숙한 저희들은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해 죄송스럽고 송구한 마음뿐입니다.

내려가서 뵙겠다는 약속도 지키질 못했고, 병원에 계실 때만이라도 찾아 뵙고자 했던 다짐도 지키질 못했습니다.
기다리시게 한 시간들이 너무 길어 왜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질 못하고 그렇게 가셨냐는 원망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전국에 있는 열사들 장례를 도맡아 치렀던 박성호 동지도 어머니를 제 손으로 모시지 못하는걸 너무 애통해 하고 있습니다.
박영제, 정홍형, 오늘로 단식 23일째, 누구보다도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는 신동순 동지.
그리고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의 뜻을 가슴에 품고 사는 우리 조합원들, 다 같은 마음입니다.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그리고 비록 다른 깃발 아래 선 노동자들까지 모두 같은 자식으로 품고 사셨던 어머니. 이제는 하늘 나라에서 수많은 자식들을 품고 사실 어머니.
먼저 간 아들을 가슴에 품고 사시는 어머니에게 살아있는 자식들이 얹혀 살았던 세월이 너무 길었습니다.

이제 편안히 가세요.
배가 고프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아들 만나셔서 이승의 고통일랑 다 내려 놓으시고 못다 한 얘기, 못다 나눈 정, 맘껏 나누세요.

어머니로 인해 스스로 노동자임을 자각하고 싸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지키지도, 달라지지도 않는다는 걸 깨달은 수많은 노동자들이 어머니를 기억할 것입니다.
어머니, 생전에 그러셨듯 먼 길 마다 않고 와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제대로 살 수 있도록 늘 길잡이가 돼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손도 못 잡아보고, 승리의 소식도 전하지 못한채 이렇게 애통하게 어머니를 보내드리지만 정리해고 없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열심히 살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어머니.

2011년 9월 6일

이소선 어머니 추모의 밤 85호 크레인 김진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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